장미령은 표류 중인 지태를 못 알아봤을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봄. 차소월은 그보다 덜한 상처로도 지태의 이상을 감지했었음. 지태가 그 날 엉망으로 당한 부상은 하루 이틀 안에 나을 것도 아니었고 그 모습으로 학교에 나왔든 며칠 결석을 했든 담임인 장코치가 못 알아채기 어렵지 않나?
이현걸은 현명한 해결은 무엇을 포기해도 되는가 가려내고 그러한 상실을 인내함으로 인간은 존엄성을 부여받는다고 했음. 소월이는 살면서 당하는 상실과 고통을 인내하는 정도가 아니라 피하지 않고 즐기고 있음. 이건 환경의 개선으로 이룬 게 아니라 차소월 안에서 이미 이루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