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서 조선시대 과거 시험 급제자 중 문과의 소과 초시, 복시 합격자의 방방의 때 복식(1746년 이후 제도) 차림새와 대과 전시 합격자의 방방의 때 복식 차림을 그림으로 제시하였습니다. 해당 자료가 여러분들이 과거 급제자의 복식을 구분 재현함에 있어 기초 사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유생들은 소과 합격자답게 1746년 이후부터 개정된 복두, 난삼, 영대, 화의 제도를 고증하였으며, 영조는 갓을 썼다는 기록에 따라 도포를 입도록 하였고, 문무관리는 국왕이 편복(便服)을 입으면 신하들은 시복(時服)을 입도록 하라는 《승정원일기》 기록에 따라 시복을 입도록 재현하였습니다.
《영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기록을 보면 이 날 영조는 승보시에 합격한 유생들을 친견(親見)할 때 익선관복 차림이 아라 '갓을 찾아 썼다(索笠)'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이는 영조가 승보시 합격자들을 볼 때 《안씨가훈(顔氏家訓)》에서 보이는 글귀를 따른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와 같은 선행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공개하는 문과 대과 급제자의 공복 차림은 아래 이미지와 같습니다. 복두에 어사화, 녹공복, 야자대, 목홀, 흑화 차림을 한 선비의 모습을 재현한 것인데요. 추후 문과 과거 급제자의 복식이 여러 컨텐츠에서 이와 같이 재현되는 것이 보편적이기를 바라봅니다.
오늘은 초초혼(@chochohon)님에게 부탁드린 조선 후기 연령군(延齡君) 이훤(李昍, 1699~1719)의 홍공복(紅公服) 유물을 바탕으로 한 공복본 일러스트를 공개합니다. 연령군은 숙종(肅宗)과 명빈 박씨(䄙嬪朴氏)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연잉군(훗날의 영조)과 함께 숙종의 총애를 받았던 왕자입니다.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 소장중인 《동궐도(東闕圖)》유물을 살펴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동궐도의 한켠에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을 볼 수 있는데요. 돈화문의 왼편 상단을 보면 의장고(儀仗庫)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평소 이 창고에 왕실 의장물을 보관하였음을 알 수 있지요.
오늘은 오례가 고증하고, 금수님이 그려 재현한 의친왕 이강(李堈, 1877 ~ 1955)의 원유관복(遠遊冠服) 차림을 공개합니다. 의친왕은 고종과 귀인 장씨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1891년 의화군(義和君)에 봉해졌고, 1900년 8월에는 영친왕(英親王)과 함께 의친왕(義親王)에 봉해졌습니다.
사진 7,8은 고려말 유학자인 이제현 선생의 초상화이며, 사진 9가 바로 이유원의 초상화입니다. 이유원은 학창의 차림에 연입관으로 추정되는 관모를 쓰고 있는데요. 이제현 선생 초상의 관모와는 높이나 형상이 조금 다르지만 모자 위에 연잎을 얹은 모양새가 연입관과 유사하긴 했다고 볼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