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
그리고 피날레에서 무대가리가 이런 저주의 실체를 알려줍니다. 사실 이 세계에서 저주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쉽게 풀 수 있습니다. 사랑의 키스 한 번이면 저주를 풀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주의 고통스러운 점은 ‘타인에게 그 저주를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관객들은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눈에 그렇게 보이니까요.’ 그런데 정말로 소피에게 걸린 저주가 소피를 늙게 만드는 저주일까요? 원작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애니메이션에서는 그 묘사가 이상하리만큼 모호하게 나옵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화면도 예쁘고 음악도 아름답고 분명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당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불친절한 스토리텔링이 극대화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사실 <이웃집 토토로>가 성공이라고 하기 힘든 결과를 맞은 이후 슬럼프에 빠져 본인은 연출에서 빠지고 후계자 양성에 힘을 쓰려 했습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도 신인에게 맡기려 했던 작품이고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형적인 ‘노력하는 천재’로 초기작들을 보면 여러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들을 많이 따왔습니다. (독창성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 영향을 미친 작품은 뫼비우스의 <잉칼>입니다.
소설은 고주로의 최후도 다루고 있습니다. 곰을 사냥하던 고주로는 곰의 앞발이 자신을 습격하는 걸 보고 정신을 차리자 별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걸 발견합니다. 사후세계에 온 것입니다.
치히로가 친구들의 선물을 통해 망각을 벗어나 이름을 기억해내고, 하쿠의 등에 올라타서 망각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기억해내고, 하쿠가 치히로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냈던 것처럼,
그렇다면 인간 세계로 돌아간 치히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위에서 치히로를 구해준 것이 왜 하쿠의 터전을 잃게 했다고 제가 추측하는 것일까요?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얘기해보도록 하죠.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