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태에겐 비어버린 공간만 분명한데 마리아는 지태의 그 빈 공간에 들어와 그 자리를 메움. 마리아는 지태 눈앞에 보이고 잡히며 실재함. 마리아는 지태를 돌봐주는 존재였고, 지태가 쓸모를 증명해 버림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존재고, 강해져서 목숨 걸고 지켰어야 했던 존재가 됨.
지태를 들이는 데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냐는 고코치의 물음과 내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지태의 지적에 그랬음. 마리아는 복수와 가족 구출이라는 목적을 당장 말할 수 없기에 말을 못 알아듣겠다는 작은 거짓말 뒤에 큰 비밀을 숨긴 것임. 여기까진 너무 당연하고 이해하기 쉬워 의문이 남지 않음.
반면에 정음이는 감탄할 만큼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친구들보다 조금 더 일탈을 꿈꾸고 그것을 얻기에 망설이지 않는 애임. 옥타곤 위에서 정음이는 성실한 훈련을 바탕으로 일상보다 훨씬 자유로워 보임. 정음이가 누가 봐도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대총가열 영준이에게 끌린 건 자연스러움.
영준이는 굴다리에 있을 때에도 모범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가득했음. 생존의 문제에도 범죄에 가담하는 걸 꺼림칙하게 여기거나 자기 것이 아닌 교복을 단정하게 입거나...격투 스타일조차 정석임. 정음이는 누가 봐도 모범과 성실의 표본이고 이런 정음이에게 영준이가 끌리는 건 당연하겠지.
격삼 보면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상대를 통해 충족하는 캐가 많은 게 재미있음. 사교적인 사랑이와 단짝인 성희, 감성적인 중희와 단짝인 은솔이, 하민이의 피지컬이 부러웠던 태영이, 자신을 누르는 압도적 강함을 가진 마리아를 동경한 하민이 모두 자기에게 결핍된 것을 상대에게서 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