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잠깐 지태와 비교하자면 뚜렷한 목적이 있는 마리아에 비해 지태에겐 모든 것이 막연하고 모호했음. 동생을 찾는다? 주대각에게 납치된 혈육을 찾는 것은 마리아와 같아도 뜯어보면 같지 않음. 마리아의 혈육은 원수의 손에 있고 반드시 구해야 할 대상이지만 지현이는 다름.
개그 때문에 웃으면서 지나갔지만 곱씹어볼수록 아니 정말 굳이 왜? 라는 의문이 드는 장면이었음. 그런데 생각해볼수록 마리아는 그 순간 그렇게 회피하고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듦. 긍정적인 쪽이든 부정적인 쪽이든 둘의 관계를 규명하면 지태와는 다르게 마리아에게 타격이 생김.
외부에 둘의 관계가 무엇으로 알려지든 마리아에겐 상관없음. 하지만 외부 아닌 지태에겐 관계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면서 과하게 반응함. 네가 내말만 들으면 되는 관계지. 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을 주대각이 한 짓을 끄집어내고 널 좋아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 알지? 라는 뉘앙스를 담아 말함
지태를 들이는 데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냐는 고코치의 물음과 내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지태의 지적에 그랬음. 마리아는 복수와 가족 구출이라는 목적을 당장 말할 수 없기에 말을 못 알아듣겠다는 작은 거짓말 뒤에 큰 비밀을 숨긴 것임. 여기까진 너무 당연하고 이해하기 쉬워 의문이 남지 않음.
그래서 소월이와 마리아 사이의 욕망은 한쪽으로만 흐를 수 밖에 없음. 언젠가 소월이도 마리아가 신이 아닌 사람임을 알기를 바람. 그리고 잔디를 생각할 때 작은 웃음이 나는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길 바람. 더 이상 죽을 때까지 싸우길 원하지 않길 바람. 아직은 조금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모든 고통이 끝나는 순간이 온다는 건 정말 기쁘지 않냐고...그러나 마리아는 사람임. 이미 죽음을 스스로 경험한 사람임. 고통에서 죽음으로 도망가는데 실패한 사람임. 이제 정말 죽을 수도 없음. 잃어버린 내 가족이 손 닿을만큼 가까이 있고 시간은 너무 없는데 날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없음.
지태가 마리아에게 마리아가 지태에게 마음 주게 된 결핍은...역시 잃어버린 가족이겠지. 한순간에 빼앗겨 오래 비어있던 공간에 누군가 들어온 것임. 그 대상이 원래 자기의 가족과 아주 닮지 않았다고 해도 문제가 되진 않았겠지. 둘은 오래 목말랐고 원래 마른 땅일수록 물이 잘 스며드는 법이니까
반면에 정음이는 감탄할 만큼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친구들보다 조금 더 일탈을 꿈꾸고 그것을 얻기에 망설이지 않는 애임. 옥타곤 위에서 정음이는 성실한 훈련을 바탕으로 일상보다 훨씬 자유로워 보임. 정음이가 누가 봐도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대총가열 영준이에게 끌린 건 자연스러움.